中/북경 답사 2차 68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3일 중국국가박물관中国国家博物馆2(상고하상서주시대远古夏商西周时期)

지하 1층의 고대중국 기본진열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여기만 보는데도 3시간은 잡아먹는다 입구에 있는 중국 지도 북경원인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상고시기 북경원인 등 각종 원인들의 뼈 북경원인의 두개골은 중일전쟁 당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운송되는 도중 사라졌다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의문 다른 원인들의 두개골 황화 문명의 시작인 배리강 문하권에서 발굴된 도구들 삼족도정신석기시대 양저문화 응형도정신석기시대 앙소문화 과문사사채도권신석기시대 마가요문화 도권신석기시대 인골과 가축 부장 상태지층을 그대로 떠왔다 옥룡신석기시대 홍산문화 옥종신석기시대 양저문화 크다옥종 중 단연 최고 나체부조채도호신석기시대 마가요문화 학어석부도채회도홍신석기시대 앙소문화 옥벽신석기시대 앙소문화 옥종신석기시대 앙소문화 균운조옥패신석기시대 홍산문..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3일 중국국가박물관中国国家博物馆1(경전미술经典美术)

3일차 아침오늘은 중국국가박물관으로 간다 천안문동역으로 나간다 국가박물관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합쳐 세운 최대 박물관 건축면적만 20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소장품은 중국 2위, 전시품은 중국 1위에 달한다 아침 일찍 줄을 서며 건너편의 인민대회당을 바라본다 박물관이라지만 바로 옆이 천안문 광장이고 해서 그런지 경비가 삼엄하다 겨우 표사는 곳 입장 기본적으로 무료이지만 신분증을 보여주고 표를 받아야 한다외국인은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 표를 수령하고 다시 줄을 선다 아직 개관시간까지 몇 분 남아있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행묵의 기념사진 드디어 입장지난번에 왔을 때는 오후에 처음 들어와 고대중국 기본진열밖에 못봤다. 이번엔 하루를 통으로 잡고 시대별 전시(고대중국, 부흥지로)와 주제별 전시를 ..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경산공원景山公园

경산공원전에 갔을 때도 좋은 기억이 많은 곳이다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었다 자금성 나온 기념사진 경산공원의 입구인 만세문으로 입장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기망루. 경산에는 팔기의 자제를 위한 학교인 경산관학당이 자리잡았는데 기망루는 그 중심 건물로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었다 경산공원은 명청시대의 후원으로 본래 원나라 황궁의 일부로 생각되는 곳이다. 강이 없는 북경에 북해, 중난해 등 인공 호수를 파고 그 흙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만세산, 후의 경산이다. 이후 영사전, 수황전 등 사당과 절, 궁전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명나라 숭정제가 최후를 맞이한 곳도 이곳 경산이다의화단 사건 당시 팔개국 연합군이 이곳을 습격하여 경산 오정이라고 불리는 건물의 불상을 털었고 정자 하나는 불질렀다..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10 (후삼궁後三宮·어화원御花园·신무문神武門)

이제 건청문을 통과한다 건청문 부터는 청나라 멸망 이후에는 한동안 청나라 소조정 소속이었기 때문에 현판이 한문과 만문이 병기되어 있다 건청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후조의 모습 후조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청궁이 나온다, 건청궁(乾清宫)은 명나라 때 처음 지어져 이름이 바뀌지 않은 몇 안되는 건물이다. 영락제부터 숭정제까지 명 14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이자성의 난 당시 불탔다가 재건되며 순치제와 강희제도 사용하였으나, 옹정제부터는 양심전이 황제의 거소가 되고 이곳은 일종의 편전으로 운영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가경제 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어로석 내부의 옥좌 정대광명이라는 편액은 순치제의 글씨로 강희제 때 황태자를 정했다가 난리가 나서 태자 제도가 사라진 후 옹정제 이후 황제는 저 편액 뒤에 후계..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9 (영수궁寧壽宫 진보관珍宝馆)

진보관인 영수궁 입구 여기 쯤 되면 지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따로 10위안을 내고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구룡벽 구령벽은 일종의 영벽인데 그중 가장 격이 놓은 것이다 이곳 영수궁 구룡벽도 유명한데, 북해공원의 구룡벽, 대동 구룡벽, 평요 구룡벽이 더 손꼽힌다 영수궁의 정문인 황극문을 지나면 제2문인 영수문이 나온다 진보관으로 사용되는 영수궁 지도 영수궁의 정전인 황극전 영수궁(寧壽宫)은 건륭제가 물러나 태상황이 된 후 살기 위해 지은 궁이다. 본래 후궁들이 살던 곳을 밀어버리고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명청 황실의 가장 진귀한 보물을 전시하는 진보관으로 사용된다 옥으로 만든 십이지상 전황석으로 만든 인장 하나의 돌을 조각해 사슬을 만들었다 마노 필가 홍옥 향로 비취 장신구류 산호 사자 금제상감함 옥..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8 (봉선전奉先殿 종표관钟表馆)

이제 자금성 동쪽으로 간다내우문을 통과 후궁 권역은 이렇게 골목까지 담으로 둘러쌓여 있어 답답하다 또 나오는 문 근광우문 함화우문을 거친다 닫혀있는 영수문 동육궁 중 하나인 영수궁의 정문현재 비공개 골목을 따라 걷는 중 셀카 흠 보화전 뒤편이 나온다 월대의 모습 후조의 정문인 건청문 자금석 최고 크기인 어로석 엄청나게 길다장관 이 거대한 한백옥을 옮기느라 운하가 얼었을 때 얼음 위로 옮겼다고 건청문 여기는 좀 후에 가기로 하고 후좌문 옆으로 빠지면 진보관 입구가 나오고 일종의 광장이 나온다 종표관 입구이게 일반 입구이고 봉선전의 정식 입구는 여기다 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황실의 가묘이기 때문에 입구도 화려하다 봉선전 명나라 때 처음 세워졌으며 청나라 때는 계속해서 역대 황제와 황후의 위패를 모신..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7 (수강궁壽康宫)

수강궁의 입구인 수강문작지만 황유 벽돌로 장식해 격을 높였다 수강궁 정전수강궁은 청 옹정제 때 처음 세워진 곳으로 황태후와 태비 들을 위한 건물이다. 황제의 모후들이 입주했으며 주로 건륭제 이후의 태후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의화단 사건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2015년 수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다만 화원 등은 아직도 복구 중이라고 수강문의 영벽 정전으로 간다 안에는 태후들의 생활상을 복원 전시 중이다 정면 어답로손상이 심하다 내부의 모습 천정 측면의 생활 공간태후의 의자 태후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전시가 진행 중 건륭제로 생모로 이곳에 살았던 효성헌황후(성모황태후)의 초상 건륭제가 어머니에게 바친 글 효성헌황후의 태후 책봉 옥책 황태후의 옥보 시호를 올린 옥책 그녀의 조주 건륭제가 효성황후에게 바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6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2)

다음 전시관불교조각 외 다른 것들을 주로 다룬다 북위 부장용 도용 웃고 있다 징을 치는 중 녹유 수레 삼채 도용당 서역인 모양의 도용 삼채 진묘수 크다 낙타와 서역인 높은 가채를 한 여인모두 당 다음은 화상석 전시관산동성 등에서 한나라 때 유행한 무덤의 장식이다 말이 그려진 화상석 반대편 주로 춘추전국시대 고사가 많다 천정의 모서리 말들 사람 공자와 노자의 이야기 주공과 성왕의 이야기 서왕모 묘실의 입구 또 다른 묘실 주작이 그려진 묘실 입구 마차와 함께 글씨도 있다 신수가 그려진 화상석 입구가 남쪽이라 주작이 많다 문의 소맷돌 청룡 주작 현무 백호 벽돌로 만든 화상전 효자들의 이야기 이런게 많다 또 다른 화상전미인도? 청룡 백호 자녕궁의 후전건륭제 때 대불당으로 고쳤다 자녕궁 뒷면 후전 앞의 돌기둥 대..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5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1)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던 자녕궁이 조소관으로 정비되면서 공개되었다 자녕궁(慈寧宮)은 황태후나 태황태후의 거처로 가정제가 처음 전설하였다. 명나라 때도 황태후나 황귀비들이 살았다가 청나라에 들어서 순치제의 모후이자 강희제의 할머니인 소성황태후(효장문황후)가 오랫동안 살았다. 소성태후가 강희제를 엎어 키웠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후 다른 태후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했고 강희제가 소성태후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나 태후를 위한 전례를 행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하다가 건륭제가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태후들을 위한 불당으로 바꾸었다.태후들의 공간은 수강궁으로 바뀌었으나 태후궁 중 가장 권위있는 곳인 만큼 건축이 가장 복잡하다. 정문은 자녕문 여기는 처음 문 앞에 두 마리의 기린이 있다 자녕문 현판 만, 몽, 한의 3개 언어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4 (외조삼대전外朝三大殿·군기처軍機處)

태화문 정전의 태화전의 정문이다2층 높이에 정면 9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왠만한 건물보다 큰 규모이다명나라 때 황극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청나라 때 태화문으로 교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광서제 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이다. 셀카 중독자 이행묵 같이 찍잔다 거대한 청동 사자 태화전의 답도중국에서는 어답로라고 한다 지붕의 모습 거대하다 현판 계단 사이사이에는 정이 있다 태화문 내부 화려한 채색이 되어 있다명, 청대에는 황제가 이곳에서 조배를 받았다. 아마 즉위도 문에서 했을 것이다. 보좌가 있는 정전은 예의상 피하는 것이 규범이었다 태화문에서 바라 본 외조의 전경 태화전을 중심으로 융종문과 경전문이 보인다 홍의각 체인각 과거 태화전의 외조에는 청동으로 만든 품계석이 있었다고 하지만..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3 (무영전武英殿 서화관书画馆)

이제 문화전을 나와 무영전으로 간다 협화문 자금성 중앙으로 통하는 문의다 넓게 펼쳐진 태화문 앞마당어머어마하다 내금수하 건너편으로 보이는 태화문 희화문으로 간다 이 문 뒤로 무영전이 있다 희화문 현판 현재 건물은 건륭제 때의 건물 희화문을 지나면 무영문이 나온다 무영문은 명나라 때 건물이다 무영문의 답도한백옥이다 들어간다 무영문 답도 무영전(武英殿) 무영전은 명나라 때 세워진 건물로 황제의 재궁으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화전이 황후의 재궁, 무영전이 황제의 재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자성의 난으로 자금성이 불탈때 도 무영전은 살아남았고 입성한 강희제는 자금성이 복구될 때 까지 무영전을 거처로 삼았다. 이후 옹정제는 무영전수서처를 설치해 이곳에서 각종 서책을 정비해 교감하고 인쇄하도록 하였고 이..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2 (문화전文華殿·문연각文渊阁 도자관陶瓷馆)

자금성 성벽에서 내려왔다 내부의 금수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내금수하 난간에 유리기와를 얹었다 멀리 보이는 문화문 문화전 일대의 정문자금성 삼대전 동서에 각각 문화전과 무영전을 두었다각각 중요한 편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삼전삼각에 내각대학사를 두고 내각 대학사가 비답의 초안을 잡았다. 말하자면 승정원 역할이 강화된 것인데 명말 부터는 내각대학사들이 정권을 잡았다 문화문 어로석 문화문 현판 문화전 모습자금성의 대부분 전각들이 그렇듯이 전전과 후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중간은 복도로 이어진 工자 건물이다. 문화전은 전전 후전은 주경전이라고 한다. 좌우로 본인전과 집의전이 있다 명 영락제 때 지은 건물이었으나 이자성의 난 때 크게 파손당한 것을 강희제가 중건한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본래 명나라 때는 태자가 섭무할..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1 (오문午门·동남각루東南角楼·동화문东华门 고건축관古建筑馆)

이제 오문으로 들어간다오문. 정남을 의미하는 문다섯개의 누각이 있어 오봉루라고 불리며 영락제 때 지어진 것이 이자성의 난으로 불타 순치제 때 재건되었으며 가경제 때 최종 이 모습으로 정착되었다여담으로 자금성에서 오문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건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최초로 박물관으로 활용된 건물이었다. 중국 최초의 박물관은 신해혁명 초기부터 만들어진 고물진열소(古物陈列所)인데 이곳은 북양정부와 떨어진 체 다소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박물관에 대한 최초의 고안은 광서제였다고 하나 결국 나라가 망하고 생겼다. 그런데 19250년대에 고궁박물원이 1926년에는 국립역사박물관(현 중국국가박물관)이 차례로 자금성에 개관하면서 자금성 내에는 3개의 박물관이 자리잡았다. 고물진연소는 이후 계속 쇠퇴하고 고궁박물원이 우세하면..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천안문天安门·사직단社稷坛(중산공원中山公园)

천안문 앞에 서 있는 화표성스러운 구역을 상징하는 기둥이다. 우리로 치면 망주석에 해당하지만 무덤이나 궁궐 어디나 세워진다는 차이가 있다 이 석사자와 함께 명나라 북경 천도 때 세워져 지금가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대한 천안문과거 황성의 정문으로 북쪽의 지안문과 한쌍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좌우 성벽이 헐리고 문루와 문만 남았다. 본래 명나라 때는 승천문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이자성의 난 때 소실되고 지금의 문은 순치제 때 다시 지은 것이다. 이후 청말 민국초 당시 황폐화되었다가 1952년 수리가 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은 다소 여러가지 행사를 위한 무대 겸 관람대의 역할이 된 느낌이 있다 성루의 높이만 35미터 길이는 57미터 폭 21미터로 왠만한 정전보다 크다성문 앞에는 금수하라는 인공 강이..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모주석기념당毛主席紀念堂·정양문正阳门

둘째난 아침 둥단역으로 이동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천안문동역으로 간다 역시나 삼엄한 경비의 출구지난번에 올 때 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감시가 심하다그래도 아침 일찍 와서 그런지 지하철 출구 검문소에서 줄을 길게 서지는 않는다 내리면 보이는 국가박물관 엄청나게 거대한 박물관여긴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 이제 두번째 검문소로 간다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 天安門廣場) 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검문소 멀리 보이는 천안문 인민대회당 검문소를 지나 남쪽의 횡단보도를 향해 내려간다 점점 가까이 보이는 천안문 중국국가박물관 이것도 거대한 건물이지만 오늘은 관람할 일정이 아니다 횡단보다 건너편에 보이는 인민영웅기념비횡단보도에도 경찰이 통제를 해서 길게 기다렸다 가야한다 1차 여행기http://ehddu.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