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수교집록(受敎輯錄) 이전(吏典)

수교집록 이전(吏典) 관직(官職) 33-001承文院副提調 雖拜承旨 勿遆 [崇禎庚午承傳]33-002副提學都承旨 若兼同經筵 則入侍時坐次妨碍 同經筵減下 [康熙壬戌承傳]33-003刑曺必多有可議之事 刑曺判書兼帶備局堂上 [康熙丁巳承傳]33-004本曺雖無行公郎廳 長官與他堂上 相議通淸 [康熙癸亥承傳]33-005本曺郎廳 則堂上自爲選擬 堂下淸望 則使郎廳 依前通塞 堂上郎廳 相議可否 無郎官時 堂上相議通淸 [康熙乙丑承傳]34-006刑曺郎廳 限朞年 勿爲遷動 臺侍出入之人 亦爲交差 [康熙丁未承傳]34-007掌隸院郎廳 依刑曺郎官例 定朔久任 勿許限前遷動 [康熙庚申承傳]34-008槐阮上博士有實病 則今次官分館 [康熙丙寅承傳]34-009各司久任官 依大典 遷轉安徐 如監察守令陞品官及凡擇差處 勿論久任 [嘉靖丙午承傳]35-010戊午以後代加 朝奉以上..

史/법전 2013.06.12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經國大典註解序古今載籍之行世者 必有註䟽 發明羽翼然後 讀者不迷其宗旨 而無所疑難 至若條章令式之書於句讀文義之釋 尤致詳焉 所以資其誦習 而便於奉行也 歷代法書 皆有講明之說 如大明律䟽議辨疑解頤 卽其一也 惟我國家 自太祖太宗以降 作述典章曰元典 續典續集 而各有謄錄 俾官吏 得以沿其門類 而泝其源本 不眩於施用 其慮遠矣 第篇帙浩穰 卒難考閱 且不免有牴牾混雜之患 議者病焉 逮至世祖大王 思欲變而通之 爰取元典等諸書 刪繁就簡 取捨悉當 名曰經國大典 至今遵行 然其遣辭措意 惟務簡奧 不顧人所難解 夫旣不通於其文 則其瞀於用法 無足恠矣 庚戌春有言 其須加註釋 乃便於行者 命設局於禮曹 使通禮院左通禮[臣]安瑋 奉常寺正[臣]閔荃 通抄大典內 文字之過約 推行之最礙者 若干條 各係註其下 而質訂於判書[臣]士龍 參判[臣]沈通源 參議[臣]李夢弼 以脫初稿 復就政府 是正去就於領..

史/법전 2013.06.12

이두자료

이두 정리※원문 뒤의 숫자는 추안 · 국안의 원문 쪽 수를 가리킨다.加于더옥(더우여, 더욱) : 더욱, =尤于.更良가새아 : ①다시,“同日 吉詠更推白等 蘇直長往來疎數 及云節奴豆應乞應伊等所在處是沙餘良 崔九翼旣是云節之九寸姪 則矣身果幾寸親是喩 幷以更良直招亦 更推敎是臥乎在亦”116.敎味이산맛 : ①이신 뜻, 하신 뜻, “時未娶妻 又無家舍奴僕爲有去乎 相考施行敎味招辭是乎所 牒報是白齊”121.敎味白齊이산맛삷제 :

史/법전 2013.06.12

인조실록 9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 인조09163111을해*정조 망궐례를 거행하다인조실록24권1631-010-01 인조09163113정축*간관이 하사한 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복시 관리를 매질한 동창위 권대항을 탄핵하였으나 듣지 않다 인조실록24권1631-010-03 인조09163116경진*민성휘가 날리로 독서할 여가가 없으니 평안도의 교생 고강을 3년 후에 하게 해 달라고 치계하니 종 인조실록24권1631-010-06 인조09163117신사*지난 겨울 11월 함경도에 큰 눈이 내려 인명피해가 있고 경성 이북의 도로가 불통하다인조실록24권1631-010-07 인조09163118임오*관직임명인조실록24권1631-010-08 인조091631110갑신*태학생에게 황감을 내리고 시취하다 *전 병조참판 이명준의 졸기..

史/실록 2013.06.12

인조실록 8년

왕력연월일간지기사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8163011신사* 망궐례 * 예조가 삼공의 의견에 따라 이번 흉역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날을 정해 교서를 반포할 것을 청하니 종인조실록권221630-010-01인조08163012임오* 승정원에서 누가 보낸지 알 수 없는 고변서를 어떻게 처리할 지 묻자 태워버리라 명. 사신 왈 말세의 인심이 이 지경이었는데 임금이 못된 자들을 풀이 죽게 만들었다.인조실록권221630-010-02인조08163013계미* 예조가 각 능의 오향을 다시 거행하는 것을 대신에게 의논하게 시행케 하자고 아룀. 윤방, 오윤겸, 김류, 이정구가 아뢰기를 태묘에서 오향을 거행하여 능침에서 중복해서 대제를 지낼 필요가 없어 예전에 폐지한 것이니 이는 재정상황이 안좋아서가 아니라 기존의 제례가 번잡해서였..

史/실록 2013.05.13

인조실록 7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 인조07162913기미*용골대 등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연로변의 쇄마를 빼앗아 가서 서로 백성들의 괴로움이 커지다 *비국에서 조군과 수군의 역이 너무 고되 늘 기폐하는 폐단이 있으니 대전에 기피한 자를 중하게 처벌하고 다시 본역에 충정하자고 했는데 이유가 있다. 당사자를 충군하는 율은 적용해야 효과가 있을 것인데 조군과 수군의 차이를 두면 안되니 수군으로 대사한 자로 당사자를 충군토록 하자 하니 종 인조실록20권1629-010-03 인조07162914경신*경기 감사 최명길이 고양 등 8고을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청으로 이송할 것을 아뢰니 종 *최명길이 충장·충익·충순 3위에 옮겨 바꾼 폐단을 아뢰니 군적청에 내리다. 광해조 때 3위에 제멋대로 소속된 자들이 많았다. 반정 이후..

史/실록 2013.05.12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성립과 변화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성립과 변화 1. 조선전기 수군 체제의 정비 조선시대 수군의 편제는 모두 왜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연악 지역을 중심으로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으며 심지어 내륙 깊숙이 혹은 수도 가까이까지 왜군이 침입해온 경우도 있었다. 황산대첩 등에서 왜구를 물리친 바 있었던 조선의 태조는 개국 초부터 왜구 토벌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아직 체계적·조직적 수군제도를 정비하지는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각 지방에 수군도절체사를 파견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군 체제 정비가 시작되어 수군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를 정점으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만호(萬戶)·천호(千戶)·백호(百戶) 등의 관직이 설치되었다. 본격적인 수군 체제의 정비와 확장은 태종과 세종..

史/조선 2013.05.05

21세기 한국사학 무엇을 해야하나 - 오종록

21세기 한국사학 무엇을 해야하나 오종록(성신여대) *이 글을 쓰신 오종록 선생님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선전기 군제사로 박사를 받으셨습니다. 이 글은 2013년 5월 3일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주최 좌담회의 발제문입니다. 전면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공부해온 한 학자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생각할 거리를 여러 개 던져주는 글이기 때문에 소개합니다. 아직 21세기의 초입부를 지나는 시점에서 21세기 동안 한국사학이 해야 할 과제를 전망하는 것은 필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바꾸어서 생각하면,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한국사 연구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사학의 과제였으나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과 ..

史/그 외 2013.05.04

인조실록 6년

왕력연월일간지기사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6162811계해*상이 숭정전에서 망궐례를 거행함. *접대소에서 아뢰길, 호차가 한(汗)이 중남, 고화봉, 고배 등이 공로가 있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직명을 제수해주고 특별히 우대해줄 것을 요구함. 또 지금 머무는 곳이 추우므로, 병조의 건물에 모두 모여 거처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요구하였음. 이에 병조에는 방이 2개고 포목 등이 저장되있으므로, 잘 타일러 처치하게 함. *예조에서 새로운 명나라 연호에 대해 도독아문의 문서에 쓴 연호를 살펴보고 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니 종. *예조에서 능원군이 대상을 끝내고나서 제사지낼 때 입을 복색에 대해 논함. 인조실록권181628-010-01인조06162813을축*왕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진하례를 거행함. *사헌부에서 ..

史/실록 2013.04.25

17세기의 주요 사찰 건립 내역

연도사찰화주내용선조34(1601)봉정사 대웅전 개연 중수미황사 대웅전 중창송광사응선수각·천자암·보조암·임제당 중건선조36(1603)통도사 금강계단 중수선조37(1604)불국사해청관음전 충창선조38(1605)화암사 극락전 중수선조?(미상)숭림사 보광전 건립광해군1(1609)관룡사 약사전 삼창송광사부휴조전·동행랑·천왕문 중수광해군3(1611)화암사 우화루 삼창광해군4(1612)불국사 경루·범종루 중창부석사 무량수전 개연광해군5(1613)범어사 대웅전 중창광해군6(1614)선운사 대웅보전 건립광해군8(1616)봉정사 고금당·화엄강당 건립광해군9(1179)관룡사 대웅전 중창광해군12(1620)용흥사 대웅전 건립광해군13(1621)전등사지경대웅전·약사전 중간광해군14(1622)해인사 수다라장 중수광해군?(미상)대..

史/조선 2013.04.22

인조실록 5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5162711기사*망궐례를 행하다 *혼궁을 배알하다 *비국이 이완을 체직시키지 말 것과 모문룡에게 조량을 보낼 것을 아뢰니 종 인조실록15권1627-010-01인조05162712경오*예조가 상제를 지낸 후 환궁할 때 입을 옷의 종류와 색을 정하여 아뢰다인조실록15권1627-010-02인조05162713신미*인흥군에게 품록을 지급하다. 호조가 반대하나 지급 *정원을 시켜 봉림 대군이 흥화문 밖에서 교자를 탔다고 간원에게 말하게 하다. *대사간 서경우 등이 봉림 대군이 교자를 탄 일이 없고 인평대군이라 하며 이로 인해 파직을 청하니 5세의 아이를 책하고자 하니 허망하다고 답하며 체차 *헌부가 상제 후 흰색을 쓰지 말 것과 외방 관리의 불법을 살피도록 아뢰니 종 인조실록15권1..

史/실록 2013.04.15

인조실록 4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4162611을사*정조의 망궐례를 숭정전에서 거행하다 *전 판서 이시발의 졸기. 많은 노고가 있었다. 인조실록11권1626-010-01인조04162513정미*상이 호패의 일과 관리들의 근무 태만을 묻고 태만한 자를 추고. 평안감사 윤훤 추고 *양사가 각 아문과 여러 궁가의 어염을 불법으로 점유하는 폐단에 논집하니 이때 비로서 해조에 그에 대해 조처하게 하다 *특진관 이서가 포수들의 삼보를 숫자에 맞게 본읍인으로서 정급할 것을 청하니 훈련도감에서 동읍인으로 주면 채울 수 없으나 본안을 조사해 충정하겠다고 함 *환도후 봉록을 정1품 이상은 각각 2석씩을 감하고 8품 이상은 각각 1석씩을 감하였는데 호조가 너무 박하니 다시 복구할 것을 청해 윤 *동양위 신익성이 선조에서 사여한..

史/실록 2013.04.11

제도사

조선시대에 대해서 이제까지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뜻밖에도 제도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그 원인의 일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 그 자체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흔히 제도는 법이나 행정 규정의 조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제도의 중요한 일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제도는 그것보다 훨씬 넓고 깊다. 법과 행정 조문이 물 밖에 드러난 빙산이라면, 관련된 관행은 물 아래 숨겨져 있는 빙산 같이 거대하다. 법이나 행정 규정은 제도의 일부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제도는 빙산 같은 무기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에 가깝다. 유기체가 그렇듯이 제도도 진화의 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 이정철, 『언제나 민생을 염려..

史/조선 2013.04.06

인조실록 3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3162511경술*도원수 이홍주가 적의 기병이 봉황성에 모여 있다 하여 비변사가 각도에 하유해 군사조발할 것을 청했는데 다시 소식이 없어 정지 *황해도관찰사 권첩이 학행 있는 유생을 교관으로 각읍에 배치하자고 하였는데 예조에서 이를 따라 각도에 훈도와 제독관을 뽑을 것을 청하니 종. 또 권첩이 양계와 해서 백성은 공신의 노비와 재상의 반인으로 안되게 하고 상번군의 가호 잡역을 감해달라 하니 종 인조실록권81625-010-01인조03162512신해*비변사에서 전반사 윤의립으로 하여금 모영에 가서 설득하고 청람대포의 물건을 얻어 곡식을 무역하여 요동 백성을 구제하게 하자하니 종 인조실록권81625-010-02인조03162513임자*총융사 이서가 경기 각읍에 군관과 도감 기고관..

史/실록 2013.03.30

인조실록 2년

왕력연월일간지내용서책책수일자인조02162411병진*회양 부사가 방어사 겸임하는 것을 혁파하다 인조실록권41623-010-01인조02162412정사*정원이 정월 초하루에 일변이 있었음을 아뢰고 삼가하기를 청하니 가납 인조실록권41623-010-02인조02162413무오*관직임명. 이서 경기관찰사, 윤황 응교, 이귀 우찬성 *헌부가 서변이 안정될떄까지 자전에 바치는 종이를 줄일 것을 청하나 부종 인조실록권41623-010-03인조02162414기미*호조에서 올 봄 녹봉은 쌀 10500석과 콩 4600석이 필요한데 광흥창에 쌀 880석과 콩 230석 밖에 없으니 별영 쌀 2천 여 석을 덜어내 쓰되 모든 녹봉을 반감하자 하니 지도 인조실록권41623-010-04인조02162415경신*조강에서 이귀가 원자보양관을..

史/실록 2013.03.25